, 나 내일 졸업식인데 올 수 있어요?”

못 갈 것 같은데.”

.”

 

창민은 졸업식을 앞두고 윤호가 혼자 살고 있는 오피스텔에서 윤호를 기다렸다. 퇴근을 하고 돌아온 윤호가 집에 들어왔다가 창민을 보고 놀랐다. 창민은 그런 윤호의 손을 잡아끌고 거실 소파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내일 졸업식이라며 윤호에게 올 수 있냐 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못 갈 것 같다, 였다. 창민은 곧바로 울상을 지었다.

 

졸업식은 못 가도 저녁은 같이 먹을 수 있겠다.”

저녁은 친구들하고 먹기로 했어요.”

,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아니면 이번 주말에 만날까?”

주말에는 가족이랑.”

 

윤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소파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기 위해 방으로 향했다. 창민은 소파에 가만히 앉아 한숨을 푹 내쉬었다. 윤호가 바쁘다는 것쯤은 창민도 알고 있었지만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자신이 너무 한심스러웠다. 올 수 있을 리가 없지. 너무 무리한 부탁이었네. 창민은 소파에 두었던 가방을 메고 일어났다. 도어락 열리는 소리에 윤호가 급히 나왔지만 이미 창민이 가고 난 뒤였다. 윤호는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창민의 폰이 울린 곳은 거실이었다. 윤호는 내일 출근하며 폰을 가져다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전화를 끊었다.

 

 

 

 

 

 

 

 

 

 

와씨, 벌써 졸업이라니 시간 진짜 빠르지 않냐? 이제 걱정이다 걱정. 우리 엄마 등록금 대출 받으면 그거 나보고 알바해서 다 갚으래. 오늘 졸업하면 알바부터 구하러 다녀야된다. , 심창민. 너는 어떻게 해주신대?”

나는 일단 대학 다니는 1년 동안은 부모님이 해주신대.”

, 복 받은 자식.”

 

친구가 장난스럽게 헤드록을 걸었다. 창민은 그런 친구의 장난에 아프다고 하면서도 함박웃음을 지었다.

 

, 근데 너 왜 아침에 전화를 안 받아?”

폰 잃어버렸어.”

어디서?”

몰라.”

그럼 졸업 선물은 폰으로 퉁 치겠네. 불쌍한 것.”

 

친구는 흑흑, 하고 소리를 내며 우는 척을 했다. 창민은 그렇게 친구들과 함께 대강당으로 향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졸업식이 시작할 때가 다가오자 졸업생들의 가족들이 하나 둘 도착하기 시작해 대강당이 더욱 더 웅성거렸다. 창민은 주변을 쓱 둘러보았다. 저 멀리 부모님이 보였다. 창민은 웃으며 그쪽을 향해 손을 흔들어보았다. 부모님도 창민을 보았는지 창민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창민은 부모님과 손 인사를 한 뒤 또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누구 찾아? 부모님?”

?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계속 두리번거리는 창민을 보고 친구가 물었지만 창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창민은 윤호를 찾고 있었다. 어제 못 온다고 했지만 왔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에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윤호의 모습은 발견할 수 없었다.

 

에휴- 뭘 기대한 거냐, 심창민.”

?”

 

친구가 창민을 보았다. 창민은 혼잣말 한 거라며 신경 쓰지 말라했다. 졸업식이 시작되고 마무리가 될 때까지 창민은 집중을 하지 못했다. 친구가 졸업앨범 받으러 가자고 이야기하고 나서야 창민은 정신을 차리고 친구를 따라 일어났다. 그리고 담임선생님께 졸업장과 졸업앨범을 받기 위해 교실로 돌아가려 할 때였다.

 

? 윤호형?”

 

창민이 뒤를 돌아보았다가 윤호를 발견하고 앞 반이 먼저 일어나 나가고 있는 중에도 그 속을 재빨리 빠져나갔다.

 

! 어디 가!!”

 

친구가 소리쳤지만 창민은 듣지 못하고 연신 미안하다고 하며 인파를 빠져나가 자신이 보았던 자리에 서있는 윤호에게로 달려갔다.

 

윤호형!”

 

창민은 혹시나 자신이 잘못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 눈을 한 번 꽉 감았다 떴다. 앞에 서있는 건 윤호가 맞았다. 창민은 윤호를 와락 끌어안았다.

 

윤호형.”

 

윤호는 창민이 너무나 기뻐하며 자신을 끌어안는 모습에 그냥 폰만 전해주러 왔을 뿐이라고 말하려다 말았다.

 

어떻게 왔어요?”

반차 냈어. 너 졸업하는 거 보고 곧바로 들어가야 돼. , 그리고 이거. 어제 두고 갔더라.”

형 집에 있었구나. 잃어버린 줄 알았어요. 다행이다. ! , 와줘서 고마워요. 저 교실 가서 졸업앨범만 받고 나오면 되니까 어디 가지 말고 기다려야 돼요? 꼭이요!”

 

창민은 신신당부를 하며 대강당을 빠져나가는 친구들을 따라갔다. 교실로 향하던 친구들은 아까까지만 해도 세상에 모든 힘든 일 다 짊어진 것처럼 울상을 짓던 창민이 즐거운 듯이 웃자 의아해했다. 그리고는 저들끼리 속닥거렸다.

 

심창민 쟤 갑자기 왜 저렇게 기분이 좋대?”

낸들 아냐? 졸업해서 좋은 가보지.”

 

졸업앨범과 졸업장을 받을 때까지 창민은 연신 싱글벙글 했다. 빨리 나가고 싶다. 창민은 그 생각밖에 안 들었다. 졸업앨범과 졸업장을 받고 담임선생님,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다 같이 사진도 찍은 창민이 교실을 빠져나가려하자 친구들이 붙잡았다.

 

어딜 가. 우리끼리도 찍어야지.”

나 가족들이랑 사진 찍어야 돼.”

누군 가족들 안 기다려? 강당에서는 울상이더니 갑자기 업 돼서는 왜 이래?”

, 알았어. 찍으면 되잖아, 찍으면. 빨리 찍어.”

 

창민은 사진을 찍으며 억지로 웃었다. 어색하게 웃는 모습이 그대로 친구의 폰에 담겼다.

 

사진은 톡으로 보낼게.”

나 이제 가 봐도 돼지?”

그래 가라 가!”

 

창민은 졸업앨범과 졸업장을 들고 재빨리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숨을 잠시 고른 창민이 전화를 걸었다.

 

! 어디에요?”

[여기 정문이야. 바로 가봐야 돼서.]

조금만 기다려줘요. 지금 갈게요.”

 

졸업앨범과 졸업장을 꼭 끌어안은 창민이 정문으로 달려갔다. 윤호는 정문 담벼락에 기대어 서서 꽃다발을 들고 창민을 기다리고 있었다.

 

. . 아이고, 힘들다. , 많이 기다렸죠? 친구들이 단체사진도 찍어야 된다고 그래서. 찍느라고 늦었어요.”

괜찮아. , 이거. 아까 급하게 오느라 준비를 못했어.”

 

창민은 윤호가 건네주는 꽃다발을 받아들었다. 손에 든 것이 많아 버거웠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졸업 축하한다.”

진짜로 정말 고마워요.”

졸업 선물 갖고 싶은 거 있으면 말만 해.”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그냥 형만. 형만 있으면 돼요. , 그리고.”

그리고?”

 

창민은 잠시 뜸을 들였다. 윤호는 창민의 대답을 기다렸다. 머뭇거리던 창민이 입을 열었다.

 

우리 여행가요. 이번 주 주말에는 가족들이랑 지내야 해서 좀 그렇고. 다음 주 주말에.”

생각해놓은 데는 있고?”

아니요. 이제 생각해보려고요.”

 

창민의 바지 주머니에 있던 폰이 울렸다. 손이 모자라 머뭇거리고 있자 윤호가 짐을 들어주었다.

 

받아봐.”

여보세요. , 엄마. , 저 이제 화장실 갔다가 나가려고요. , 빨리 갈게요.”

 

창민은 전화를 끊고 윤호에게서 짐을 받아들었다.

 

형이랑 더 있고 싶은데. 엄마가 빨리 오라고 해서. 저 들어 가볼게요.”

, 얼른 들어 가봐.”

.”

?”

 

창민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윤호의 입술에 뽀뽀를 하고 떨어졌다.

 

으어.”

 

윤호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당황하는 사이, 창민은 뒤도 안 돌아보고 다시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정문 앞에 선 윤호는 졸업한 학생들로 북적이는 운동장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창민의 입술이 머물렀다 간 입술을 매만지는 윤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