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우리 불꽃놀이 보러 가요.”

불꽃놀이?”

왜 그렇게 놀란 목소리에요? 여름인데. 여름에 일본 왔으면 불꽃놀이는 당연히 봐야하는 거 아니에요?”

그런가?”

그런가, 라니. 아저씨가 일본 가자고 했을 때 준비해온 것도 있단 말이에요. , 진짜 너무한다.”

 

자신은 불꽃놀이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는데 윤호는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아 섭섭한 창민이었다. 있는 돈 없는 돈 싹싹 긁어모아 거금을 들여 윤호와 입을 유카타도 사왔건만 무심한 윤호에 창민은 투덜거렸다. 그 모습이 귀여워 윤호는 웃음이 터졌다.

 

왜 웃어요!”

으이구, 누굴 닮아 이렇게 귀엽냐!”

아아! 아아요!”

 

윤호는 창민의 양 볼을 꼬집으며 사랑스럽다는 눈길로 쳐다보았다. 윤호가 손을 떼자 두 손으로 양 볼을 감싸고 윤호를 노려보던 창민은 윤호와 등을 지고 휙 뒤돌았다. 두 무릎을 끌어 모아 그 위에 턱을 대고 쪼그려 앉은 창민은 계속 주절거렸다. 바보, 멍청이, 똥개, 해삼, 말미잘. 키만 컸지 여전히 아이 같은 모습에 윤호는 웃음이 나오려했지만 꾹 참고 가까이 다가가 어깨를 움켜잡았다. 창민이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가자.”

! 안 가요.”

하라는 대로 다 할 테니까 가자.”

정말이에요?”

.”

 

윤호의 말에 창민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다시 윤호를 마주본 창민이 웃으며 트렁크가 있는 곳으로 가더니 무언가를 가지고 돌아왔다. 이게 뭐야? 창민이 가져온 것을 가리키며 묻자 창민은 그것을 펼쳐보였다.

 

쨔잔!”

이게 뭐야?”

이거 뭔지 몰라요?”

아는데 이건 왜?”

왜긴요. 불꽃놀이 하면 이거 꼭 입어야 해요. 그래야, 일본에 와서 불꽃놀이 본 게 뜻 깊어 지죠.”

 

그런 것도 모르고 실망이에요! 창민은 다시 입을 삐죽 내밀었다. 너 그러다 오리 입 된다. , 그러거나 말거나. 이 꼬맹이를 어쩌면 좋을까. 윤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입으면 되는 거야? 윤호의 물음에 창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창민은 파란색 유카타를 윤호에게 건넸다.

 

아저씨는 파란색, 내 거는 빨간색이에요.”

 

윤호는 창민이 건넨 유카타를 바닥에 내려놓고 옷을 갈아입기 위해 윗옷을 벗었다. 그와 동시에 창민이 소리를 질렀다. , 깜짝아. 왜 갑자기 옷을 훌러덩 벗고 그래요! 윤호는 황당해하며 창민을 쳐다보았다. 온천에 같이 몸을 담굴 때는 언제고 새삼스레 부끄러워하는 걸까. 얼굴 전체가 새빨개진 창민을 보고 황당해서 헛웃음 짓던 윤호가 유카타를 들고 화장실로 사라졌다. 창민은 손부채질을 하며 열을 식혔다. 윤호가 들어간 것을 확인한 뒤 창민은 옷을 벗고 유카타로 갈아입었다. 윤호도 곧 화장실에서 나왔다.

 

어때? 괜찮아?”

! 진짜 잘 어울려요!”

 

어색한 듯 유카타를 이리저리 살펴보는 윤호를 보며 창민은 엄지를 척 올렸다. 너도 잘 어울려. 윤호의 칭찬에 창민이 씨익 웃었다. 우리 빨리 나가요. 창민은 윤호의 손을 잡아끌고 밖으로 향했다. 불꽃놀이를 볼 생각에 기분이 좋은지 한껏 올라간 창민의 광대를 보며 웃어버렸다. 그렇게 좋을까.

 

천천히 가.”

빨리 와요.”

 

두 사람이 밖으로 나오자 몇몇 사람들이 유카타를 입고 있는 것이 보였다. 다들 한껏 들뜬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창민이 왜 그렇게 불꽃놀이를 기대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빙수 사러 가요. 아저씨는 딸기 빙수죠?”

. 너는?”

저는 레몬 빙수요!”

 

창민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언제였더라. 창민이가 근육 키우는 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게.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2004년 의류 지면 광고 찍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팔 운동을 하고 있는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자신의 팔을 만져보던 창민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왜 그렇게 나를 쳐다봤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 왜 그러냐고 물어보았을 때 창민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내 시선을 피했었다. 촬영이 끝난 뒤 숙소에 들어가서는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그 날부터 방송이 끝나고 숙소에 들어가면 창민이는 밥 먹을 때 외에는 방에서 나오는 일이 없었다. 하루는 정말 궁금해서 창민이 방에 찾아갔던 적이 있었다. 노크를 해도 창민이는 대답이 없었다. 문을 살짝 열고 안을 들어다보았다.

 

창돌아, 뭐해?”

 

내 목소리를 들은 창민이는 움찔하며 나를 돌아보더니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등 뒤로 숨겼다.

 

그거?”

, 저기 그게. 죄송해요.”

 

창민이가 들고 있는 건 어느 순간 없어져서 내가 찾고 있었던 아령이었다. 창민이의 등 뒤에 있는 노트북에선 운동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창민이는 커다란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나를 쳐다보았다. 아니, 울릴 의도는 전혀 없었는데. 근데 또 우는 모습이 예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아니, 나는 그냥.”

 

창민이는 등 뒤에 숨겼던 아령을 나에게 내밀었다. 죄송해요, 허락도 없이 가져가서. 나는 그 아령을 받고 가만히 창민이를 쳐다보았다. 창민이는 내 시선을 피한 채 노트북에서 나오고 있던 영상을 꺼버렸다.

 

강아, 형은 너한테 뭐라고 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찾고 있던 건데 여기 있어서 놀랐던 것뿐이야.”

그래도 죄송해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몰래카메라 했을 때가 떠올랐다. 몰래카메라인 게 밝혀지고 나서도 연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훔쳤던 창민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으아! 덥다, 더워!”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르륵 흘러내릴 정도의 무더위였다. 겨울도 겨울이지만 여름도 겨울만큼 정말 싫었다. 가죽으로 덮인 소파에 누워 가죽의 차가운 감촉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 시원해. 이렇게 더운 날 에어컨이라도 틀면 좋을 텐데 에어컨은 절대 틀수가 없었다. 에어컨을 잠깐 켰다 꺼도 쉽게 감기에 걸리는 창민 때문이었다. 얼마나 심하냐면 에어컨이 가동되는 건물에 들어갔다 나올 뿐인데도 기침을 하거나 재채기를 하는 등 감기 증상이 바로 나타났다. 예전에 한 번은 에어컨을 틀었더니 이불로 몸을 꽁꽁 감싸고 마스크까지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 정도로 심했다. 덥다는 얘기만 했다하면 창민은 그렇게 더우면 에어컨을 틀라고 하지만 그 모습을 본 뒤로는 에어컨을 틀지 못했다.

 

오늘 진짜 덥다.”

에어컨 틀까?”

아니, 괜찮아. 참을 만해.”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역시나 창민은 에어컨을 틀라했다. 역시나 에어컨을 틀수는 없었다. 에어컨 틀어서 창민이 감기에 걸리느니 내가 참는 게 나았다.

 

그냥 선풍기 살 걸 그랬나?”

네가 에어컨 사자며.”

나는 형이 선풍기보다 에어컨을 사는 게 더 낫다 그러니까.”

네가 에어컨에 약한 줄 몰랐으니까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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