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분주한 마당에 한 남자가 버드나무 아래에서 그것을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남자에게 다가간 소년은 그 옆에 서서 버드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아버지. 아침부터 무얼 그렇게 보십니까?”

윤아.”

, 아버지.”

이 나무가 여기에 얼마나 있었는지 아느냐?”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것 같은데 잘 모르겠습니다.”

 

무슨 영문인지 버드나무를 바라보며 자신에게 질문을 하는 아버지를 윤은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슬픈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윤은 아무 말 없이 지켜보았다.

 

이 나무는 말이다. 이 아비가 네 나이였을 때 아비의 친우가 심었던 나무란다. 그리고 이 집도 원래 그 친우의 것이었지.”

어찌 저에게 그런 것을 알려주시는 것이 온지.”

내 그 친우의 이야기를 너에게 해주려한다. 들어보겠느냐?”

무슨 연유로 그러시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한 번 들어보고 싶습니다.”

아비에겐 이 나무를 심은 친우뿐만 아니라 친우가 또 있었다. 이 나무는 그 둘과 관련되어 있단다.”

 

아버지는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고 윤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내 거야. 이리 줘!”

그냥 한 번만 보고 준다니까?”

내놓으라고!”

싫은데?”

우씨.”

 

두 소년이 서책 한 권을 가지고 추격전이 펼쳐졌다. 빼앗아 간 것을 돌려주지 않으려 도망가는 소년을 뒤쫓아 가던 소년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는가 싶더니 이내 바닥에 주저앉았다. 도망을 가던 소년은 뒤 따라 오는 이가 없자 자리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뒤를 돌아본 곳엔 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고 있는 자신의 친우가 보였다.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 들고 있던 서책을 한 번 쓱 본 소년은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소년에게 향했다.

 

창민

괜찮아?”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창민의 앞에 한 소년이 손을 내밀었다. 창민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그 소년을 올려다보았다. 소년은 웃으며 창민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이런, 옷이 더러워졌구나.”

 

창민을 일으켜 세운 소년은 창민의 옷에 묻은 흙을 털어주었다.

 

아무데서나 그렇게 주저앉으면 안 돼. 큰일 나.”

 

소년의 말에 창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책을 들고 도망갔던 소년도 어느새 그 둘 앞에 섰다. 다정한 눈빛으로 창민을 바라보고 있는 소년의 모습이 기분 나빴다.

 

너 뭐야!”

? 나는 윤호.”

누가 네 이름 알고 싶대? 창민이한테서 떨어져.”

너를 떠나보낸 지도 벌써 1년이 지났다. 네가 떠난 후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게 지내왔다. 주말동안 집안에만 틀어박혀 너의 사진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보고 싶다. 잘 지내지?”

 

사진 속 웃고 있는 네 모습에 나도 미소가 지어졌다. 사진 속 너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금방이라도 내 눈앞에 나타나 웃고 있을 너를 그려보았다. 여전히 예쁜 너는 나를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잡힐 리가 없지. 너를 향해 뻗었던 손을 거둬들였다.

 

한 번만이라도 내 눈앞에 네가 나타났으면 좋겠어.”

 

사진 속 너는 곧 대답할 것만 같다. 정말 보고 싶다.

 

휘이익-

 

열어둔 창문 사이로 바람이 들어와 하얀 커튼이 흩날렸다. 시원한 바람에 나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내가 가장 좋아했던 너의 모습을 떠올렸다.

 

, 사랑해.’

 

눈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다가오는 너의 모습을 떠올리며 이대로 눈을 떴을 때 네가 내 눈앞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헛된 바람인 걸 알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나도 사랑해. 지금도, 앞으로도.”

그 말 진짜지?’

.”

 

너의 물음에 대답하며 감았던 눈을 살며시 떴다.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내 환상일까? 내 눈 앞에 너의 모습이 보였다.

 

창민아?”

, 안녕. 오랜만이야.’

 

넌 나에게 웃으며 인사했다. 정말 내가 보고 있는 게 진짜 창민이가 맞는 것일까? 눈을 감았다 다시 떠봐도 너의 모습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너에게 다가가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내 손이 너의 뺨에 닿았다. 꿈이 아니다.

 

정말 창민이 맞니?”

 

너는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 보고 싶었어. 형은?’

나도. 나도 보고 싶었어.”

 

내 대답에 너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안겼다. 믿기지 않았다. 영화에서만 일어날 것만 같았던 일이 나에게도 실제로 일어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네가 나의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한 대학교 정문으로 외제 차 한 대가 들어왔다. 학교를 빠져나오던 학생들의 시선이 모두 외제 차에 쏠렸다. , 누구야? 차 대박. 학생들은 저마다 수군거렸다. 그 학생들 사이에 창민만이 인상을 쓰고 외제 차를 바라보고 있었다. 외제 차가 멈춰서고 차문을 열고 등장한 남자의 모습에 여자들은 비명을 질렀다.

 

저 인간이 진짜!”

 

선글라스를 벗어 손을 들어 보이는 윤호에게 재빠르게 걸어간 창민은 선글라스를 휙 뺏어버렸다. 그런 창민의 행동에도 윤호는 그저 웃어 보이며 창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만지지 마요! 내가 얘기했죠! 학교에는 찾아오지 말라고! 바보예요?”

창민이 학교 간 첫 날인데 걱정이 돼서 말이지.”

나 이제 어린애 아니거든요? 쓸 데 없는 걱정하지 말고 가요!”

집까지 데려다줄게.”

됐어요!”

 

조수석 문을 열어주는 윤호를 한껏 째려보던 창민이 얼른 타라며 재촉하는 윤호의 눈빛에 하는 수없이 차에 올라탔다. 차문을 닫아주고 윤호도 차에 올라탔다. 안전벨트를 하려는 창민의 손을 제지하고 윤호가 손을 뻗어 창민에게 안전벨트를 매주었다.

 

내가 알아서 할 거거든요? 나도 손 있어요.”

 

창민은 윤호에게 불만을 표출했다. 윤호는 늘 그런 식이었다. 남자인 자신에게 여자에게나 할 법한 매너를 보이는 윤호에게 창민은 늘 불만이었다.

 

저녁 먹을래?”

아니요.”

그러지 말고 먹으러 가자. 내가 예약해놓은 데가 있어.”

 

윤호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 창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창밖만 내다보았다.

 

창민아, 오늘 어땠어? 친구 많이 사귀었어?”

.”

다행이네. 점심은 어떻게 해결했어?”

학교 식당가서 먹었어요.”

그래? 맛은 있었어? 넌 맛없는 건 잘 안 먹잖아.”

맛있었어요. 그만 물어보고 운전에나 집중해요.”

, 그래.”

 

윤호는 창민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운전에 집중하라는 창민의 잔소리에 다시 고개를 돌려 운전에 집중했다. 차는 한 레스토랑 주차장에 도착했다. 윤호는 재빠르게 차에서 내려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

 

-”

 

창민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여자도 아니고. 창민은 윤호의 행동에 투덜댔다. 윤호는 그저 웃으며 창민과 나란히 걸었다.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서 윤호가 이름을 이야기하자 웨이터가 자리로 안내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되십쇼.”

 

자리로 안내를 끝마친 웨이터는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윤호는 창민이 앉을 의자를 끌어 빼주었다. 창민은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윤호가 해주는 데로 의자에 앉았다.

 

내가 지금은 그냥 앉는데 이런 건 다음부턴 여자한테나 해줘요.”

그럴 여자가 없어.”

아저씨도 참. 왜 선을 안 보는 거예요? 줄을 서고도 남았을 텐데.”

관심 없어.”

설마 남자 좋아해요?”

너라면 좋아.”

 

창민은 할 말을 잃고 윤호를 바라봤다. 아하하, 농담도 지나치시네요. 창민은 웃고 있었지만 사실은 알고 있었다. 윤호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쯤은. 근데 이렇게 직접적으로 좋다고 말한 건 처음이었다.

 

아저씨 나는 말이에요. 진짜 예쁜 여자랑 결혼해서 예쁜 아이도 낳고 행복하게 살 거예요. 그러니까 아저씨도 이제 결혼할 때도 됐으니까 선도 보고 결혼했으면 좋겠어요.”

나도 네 나이 때는 그러고 싶었어. 근데 지금은 아니야.”

 

창민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입을 꾹 다물었다. 윤호도 그 이상 어떠한 말도 꺼내지 않았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그 정적을 깬 건 윤호였다.

 

배고프지? 주문할까?”

 

윤호는 웨이터를 부르고 음식을 주문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올 때까지 창민은 휴대폰만 만지작거렸다.

별똥별 떨어질 때 소원 빌면 이뤄진다고 하잖아. 너 그런 거 믿냐?”

글쎄, 그다지 신빙성은 없다고 봐. 실제로 별똥별이 떨어지는 걸 본 적도 없고.”

하긴. 별똥별 보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지.”

 

친구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별똥별을 보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질지는 해보지 않아서 알 수가 없었다. 애초에 별똥별이 떨어지는 걸 본 적이 있어야지.

 

오늘 별똥별 떨어진다는 얘기가 있던데 한 번 소원 빌어볼까?”

그래?”

아침에 뉴스를 보니까 그러더라고. 오늘 밤 10시에 별똥별 떨어지는 거 볼 수 있대. 구경 갈래? 그래서 이 형님이 별똥별 잘 보이는 명당도 알아 놨다. 9시쯤에 전화할게. 튀어나와.”

 

나는 오케이, 하고 친구와 헤어졌다. 별똥별이 떨어지는 걸 보게 된다면 무슨 소원을 빌까 고민했다. 역시 여자친구가 없으니까 여자친구 생기게 해달라고 빌까? 아니면 돈 많이 생기게 해달라고 빌까? 집에 도착할 때까지 이런 저런 고민을 했다. 집에 도착해서 상쾌하게 샤워도 하고 침대에서 뒹굴 거리면서 고민 끝에 소원 하나를 정하고 9시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5, 4, 3, 2, 1. !”

 

! 과 동시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 나와! 전화를 듣고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늦은 시간에 어딜 가냐며 엄마의 잔소리가 들려왔지만 금방 올게, 하고 소리친 뒤 약속장소로 향했다.

 

어서 와.”

하아- 힘들다. 여기야? 네가 말한 장소가?”

. 아버지가 그러는데 진짜 가까이서 볼 수 있다더라. 그 별똥별 떨어지는 곳하고 제일 가깝대. 실제로 별똥별 떨어진 자리에도 가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깝다 하더라고.”

 

나는 긴가민가했지만 친구의 말을 믿고 기다려보기로 했다. 친구와 수다를 떨며 10시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소원 뭐 빌지 정했냐?”

.”

어떤 소원 빌 건데? 여자 관련? 아님, ?”

정확한 건 비밀인데 둘 중 하나는 맞아.”

나랑 똑같네. 하긴 우리가 생각하는 소원이 뭐가 있겠냐. 여자친구 생기게 해달라는 거 아니면 돈 많이 벌게 해달라는 거지. 크크.”

 

나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웃고 떠들다보니 어느 덧 시간은 10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친구는 잔디밭에 드러누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도 친구를 따라 누웠다. 그렇게 하늘을 바라보며 별을 세고 있는데 하얀 빛이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 게 보였다. ! 나는 벌떡 일어나 그것을 바라보았다.

 

! 소원 빌어!”

 

넋을 놓고 있는 나를 툭툭 친 친구 녀석은 손을 모으고 별똥별을 바라봤다. 나도 급히 손을 모아 별똥별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었다. 별똥별은 빠른 속도로 사라져버렸다. 갔다.

 

, 하마터면 소원 못 빌 뻔했다.”

그러게.”

소원 꼭 이뤄졌으면 좋겠다. 별똥별도 봤겠다. 우리 이제 그만 갈까?”

그래.”

 

뭔가 아쉬웠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친구와 헤어져 집으로 향했다. 소원이 진짜 이루어질까? 싶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갖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한참을 걷고 있는데 누군가가 반대편에서 뛰어오는 게 보였다.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내가 있는 곳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아직 안 끝났잖아! 도망가면 어떻게 해.”

으아, 나 진짜 하기 싫어!!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 그럼 어떻게 하냐. 난 죽어도 소개팅 못 나가니까 네가 나가라고! 거기 서!”

아씨, 너 같으면 서겠냐? 소개팅 나가기 싫으면 그냥 안 가면 되지! 왜 나보고 가래!”

? , 너 앞에!”

앞에 뭐!”

 

쏜살같이 달려오던 누군가와 그대로 부딪힌 나는 뒤로 넘어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 비명소리를 지르며 바닥에 누워버린 내 위로 상대방이 엎어지며 나와 얼굴을 마주했다. ? 순간 두근두근 심장소리가 귓가에 크게 울렸다. , 예쁘다.

 

으앗, 죄송합니다.”

 

상대방은 금방 내게서 떨어졌다. 나는 상체를 일으켜 상대방을 바라봤다. 다시 한 번 봐도 예쁜 얼굴이었다. 내가 빤히 쳐다보고 있자 나를 마주보고 앉은 사람도 멀뚱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 .”

, 괜찮아?”

? .”

그러니까 도망가길 왜 도망가. 이제 입술만 칠하면 끝인데. 지금까지 옷도 입고 메이크업도 잘 받아놓고 왜 도망 가냐고.”

친구들끼리 나 붙잡고 못 도망가게 한 게 누군데 그래!”

 

말다툼을 하고 있는 둘을 번갈아 바라봤다. 닮았네. 쌍둥이인가? 넘어진 쪽이 훨씬 예쁘긴 한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앞에 사람이 있는데도 다투고 있는 것을 보다가 아직도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사람에게 손을 뻗었다.

 

일어나요.”

, 고맙습니다.”

 

내 손을 잡고 일어난 상대방은 키가 컸다. 여잔데 이렇게 키가 크나? 하긴, 뭐 농구 선수라던가 모델들은 다 이렇게 키가 크긴 하다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상대방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으니 상대도 나를 계속 쳐다만 보았다.

우리 어디 놀러갈까?”

 

너는 나를 보며 또박또박 그렇게 물었다. 나는 바다가 가고 싶다했다.

 

그래? 그럼 우리 오늘 당장 떠날까? 어디로 갈래? 부산? 아니면 그냥 정동진? 어디가 좋겠어?”

 

넌 나에게 또 다시 어느 곳으로 가고 싶냐 물었다. 나는 어느 곳이든 괜찮다했다.

 

그럼 우리 부산 갈까? 23일로 다녀오자.”

 

너는 그렇게 말하며 트렁크를 가져와 짐을 싸기 시작했다. 나도 너를 따라 함께 짐을 챙겼다. 너는 굉장히 들뜬 모습이었다. 짐을 대충 싸려는 너를 말리고 빠진 것이 없나 꼼꼼히 체크했다.

 

빠진 거 없지? , 맞다. 카메라.”

 

너는 급히 방으로 들어가더니 카메라와 밀짚모자를 챙기고 나왔다. 그리고 그것을 내 머리 위에 씌워주었다. 놀라서 쳐다보자 너는 예쁘다고 하며 카메라를 들어 내 얼굴을 찍었다.

 

바다 가서 찍으면 진짜 예쁘겠다. 그럼 우리 출발할까?”

 

너는 트렁크를 가지고 먼저 나갔다. 너를 뒤따라 나가자 한 손은 트렁크 손잡이를 잡고 한 손은 내 손을 잡았다. 손을 빼내려고 했으나 너는 힘을 주어 잡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내내 너는 내 손을 놓지 않았다. 중간에 사람이 타는 바람에 놀라 손을 놓으려 했지만 너는 꼭 잡고 놓지 않았다.

 

같이 어디 가는 거 오랜만이다, 그치?”

 

나는 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뒷좌석을 열어 트렁크를 실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조수석을 열어 타라며 손짓했다. 차에 올라타자 너는 문을 닫고 운전석으로 향했다. 안전벨트를 매려는 순간 너는 내 손을 잡아 저지하며 안전벨트를 끌어당겨 매주었다. 그리고 나서야 너도 안전벨트를 매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럼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너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 너는 왜 웃냐며 투덜거렸다.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가고 아파트 정문을 벗어났다. 나는 창문을 열어 창밖을 내다보았다. 멀리 나가는 것은 오랜만이었기에 들뜬 기분이었다.

 

여행가는 분위기가 너무 안 살지?”

 

너는 신호에 걸린 틈을 타 CD를 찾아 플레이어에 넣었다. 스피커를 통해서 나오는 노래는 언젠가 내가 좋아한다했던 노래였다. 너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이거 네가 좋아했던 여름 노래들 다 모아놓은 거야. , 이제야 분위기가 난다.”

 

너는 운전을 하는 내내 흘러나오는 노래의 박자에 맞춰 운전대를 검지로 툭툭 쳤다.

선배 오늘 소개팅 있어요? 오늘 옷 장난 아니다.”

아니, 소개팅은 아니고.”

 

집이 학교 근처라 늘 트레이닝복의 편안한 차림이었던 윤호가 검은 수트를 차려입고 등장하자 강의실이 시끄러워졌다. 잘생긴 얼굴과 호쾌한 성격 탓에 인기가 많은 윤호라 더더욱 시끄러웠다.

 

오빠 오늘 진짜 멋져요.”

고마워.”

오늘 무슨 날이에요?”

그건 아니고 그냥 좋아하는 사람한테 멋지게 보이고 싶어서.”

 

윤호의 말에 주위가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도대체 윤호가 좋아하는 사람이 누굴까 강의실을 빙 둘러보며 수군거리는 학생들이 많았다. 이 상황을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창민은 강의실이 시끄러워지자 인상을 찌푸렸다.

 

야야, 심창민. 윤호형 우리 과에 좋아하는 사람 있나봐.”

, 알게 뭐야.”

혹시 우리 과에서 제일 예쁜 소영이 아니야? 둘이 완전 잘 어울리는데?”

잘 어울리긴 개뿔.”

아님, 서현인가? 얼굴도 예쁜 편이고 성격도 좋잖아.”

, 글쎄. 관심 없다고! 정윤호가 뭐 그렇게 잘났다고 난리야!”

 

창민이 소리를 지르자 시끄러웠던 강의실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모든 이의 시선이 창민에게로 향했다. 역시나 윤호도 마찬가지였다. 윤호는 놀란 눈으로 창민을 보고 있었다. 창민은 윤호와 시선이 마주치자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얼굴은 물론 귀도 목도 다 빨개진 창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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